야구선수의 은퇴는 단순히 ‘현역 생활의 끝’이 아닙니다. 20년 가까이 야구만 해온 선수에게 은퇴는 인생 2막의 시작이자, 동시에 현실적인 도전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모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은퇴 선수들을 지원하는 제도와 문화는 시간이 흐르며 서로 다르게 발전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KBO(한국야구위원회)와 NPB(일본야구기구)의 은퇴 선수 지원 제도를 비교 분석하며, 두 나라의 시스템이 어떤 철학과 차이를 가지고 운영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KBO 은퇴 선수 지원의 현실 - 제도는 있지만 실질적 한계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창설 이후 꾸준히 성장했지만, 은퇴 선수 지원 체계는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에 있습니다. KBO는 공식적으로 은퇴 선수 복지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선수협회(KPBPA)와 함께 재취업 교육, 지도자 과정, 심리 상담 등을 제공합니다. 특히 ‘KBO 은퇴선수 아카데미’는 전직 선수들에게 사회 적응 교육과 창업 컨설팅을 제공하는 대표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아직 실질적인 취업 연계성이나 장기적 커리어 지원 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KBO 등록 선수의 평균 은퇴 연령은 약 33세이며, 실제 프로 무대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는 선수는 전체의 20%에 불과합니다. 즉, 대부분의 선수들은 짧은 기간 동안 스포츠에 전념하다 갑자기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오게 되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경제적·심리적으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KBO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7년 이후 은퇴 선수 대상 직업훈련비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스포츠산업 관련 학위과정이나 코치 자격 교육을 이수할 경우 일부 비용을 보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혜택을 받는 선수는 연간 50명 미만으로, 전체 은퇴자 대비 약 10% 수준에 그칩니다.
결국 KBO의 은퇴 선수 복지 시스템은 ‘형식적인 틀’은 마련되어 있으나, 지속 가능한 커리어 전환 시스템으로 기능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실정입니다.
일본 NPB의 은퇴 선수 지원 - 체계적 교육과 직업 다양화의 모델
반면 일본 프로야구(NPB)는 은퇴 선수 지원 제도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의 체계를 자랑합니다. NPB는 1970년대부터 이미 선수복지국(選手福祉局)을 운영하며, 은퇴 예정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세컨드 커리어 세미나(Second Career Seminar)’를 정례화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선수의 연차와 연령에 따라 맞춤형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 ① 직업 적성 검사
- ② 은퇴 후 자격증 과정 안내
- ③ 기업 취업 매칭
- ④ 경제 상담
가장 큰 특징은 일본 프로야구가 은퇴 이전부터 준비를 시작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군 등록 3년차 이상 선수는 ‘커리어 관리 교육’ 이수를 의무화해야 하며, 교육 과정에는 경제적 자산 관리, 인터뷰 훈련, 인성 코칭, 심리 상담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제2의 인생 설계 프로그램’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일본에는 ‘프로야구 OB 협회(日本プロ野球OBクラブ)’라는 공식 조직이 존재합니다. 이 단체는 은퇴 선수가 해설자, 코치, 해설위원, 기업 강사 등 다양한 직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일종의 ‘인적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합니다. NPB와 각 구단은 이 협회를 통해 은퇴자들에게 세미나, 강연, 어린이 야구 교실 활동 기회를 제공하며, 은퇴 선수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특히 일본 프로야구의 은퇴자 중 약 40%는 야구 외 산업(미디어, 교육, 비즈니스)으로 진출하며, 이는 KBO의 약 15%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처럼 일본의 제도는 단순한 복지 지원을 넘어, ‘은퇴 후 삶의 재설계’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두 제도의 차이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시작 시점’과 ‘연결 구조’에 있습니다. 한국은 은퇴 이후 사후적으로 지원이 시작되는 반면, 일본은 선수 생활 중반부터 장기적인 커리어 교육을 병행합니다. 즉, 일본은 사전 예방형 시스템, 한국은 사후 보완형 시스템인 셈입니다.
또한 일본은 NPB-구단-OB협회-민간기업 간 4자 협력 구조를 통해 은퇴 선수들의 진로를 실제 고용 시장과 연결시키는 반면, 한국은 KBO 단일 주체 중심의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프로그램 참여율과 실질 취업 연계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도 긍정적인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2023년 KBO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동으로 ‘스포츠 커리어 전환 지원사업’을 도입했으며, 이는 은퇴 선수들이 코치 자격증, 트레이너, 스포츠 행정, 해설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또한 일부 구단(예: LG, SSG, 두산)은 자체적으로 ‘구단OB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직 선수들이 유소년 야구나 기업 강연, 홍보 활동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이 일본 수준의 지원 체계를 갖추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 ① 은퇴 전 단계에서의 커리어 교육 강화
- ② 민간 기업과의 네트워크 확대
- ③ 장기적 멘토링 프로그램 도입
야구는 단순히 경기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은퇴 후에도 선수들의 경험과 전문성이 사회 곳곳에서 활용될 때, 그때서야 ‘진정한 프로야구 생태계’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불꽃야구(전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은퇴한 선수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팀을 창단, 고교야구, 사회인야구팀 등과 경기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트라이아웃 등을 통해 기존 멤버를 포함하여 프로야구 은퇴선수들이 다시 한 번 대중들 앞에 설 기회를 주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은퇴 선수 지원 제도는 여전히 발전 중이지만, 일본의 사례는 훌륭한 참고 모델이 됩니다. 야구선수의 커리어는 짧지만, 그들이 가진 집중력·책임감·팀워크는 평생의 자산입니다. 이제는 KBO가 단순히 선수 생활의 종착점이 아닌, “은퇴 이후에도 함께 성장하는 조직”으로 진화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