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는 2024년 시즌부터 전 구장에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을 전면 도입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계가 스트라이크존을 대신 본다’는 차원을 넘어, 야구 경기의 공정성과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 변화입니다. ABS는 투수, 포수, 타자, 심판, 그리고 팬들의 시각까지 바꾼 시스템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심판 체계와 경기 문화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KBO ABS의 기술적 원리, 도입 배경, 그리고 심판 시스템의 변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봅니다.
ABS 도입의 배경 — 공정성과 신뢰를 위한 필연적 변화
KBO 리그에서 ABS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21년 퓨처스리그(2군)에서의 시범 운영이 계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편차 문제, 판정 일관성 논란, 경기 흐름의 불신 등이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KBO가 세이버메트릭스 기반 데이터 분석을 강화하면서, 선수와 구단이 스트라이크존 판정 오류를 수치로 분석·공개하기 시작했죠. 이로 인해 “심판의 감(感)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판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이때 MLB(메이저리그)와 NPB(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MLB는 TrackMan, Hawk-Eye 같은 정밀 트래킹 시스템을 통해 ABS를 실험하고 있었고, 일본 NPB는 2022년부터 일부 경기에서 자동 판정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KBO는 이를 참고하여 2021년 고양·익산 구장에서 ABS 시범 도입을 실시했고, 이후 정확도와 반응 속도가 검증되자 2024년 정규시즌 전면 도입을 확정했습니다.
결국 KBO ABS는 “공정성 확보 + 경기 품질 향상 + 팬 신뢰 회복”이라는 세 가지 목표 아래 탄생했습니다. 선수 간 판정 불만이 줄어들고, 팬들이 결과에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결정이었던 셈입니다.
ABS의 기술적 구조 — 인공지능과 센서가 만드는 ‘정밀 스트라이크존’
KBO ABS 시스템은 단순한 영상 분석 장비가 아니라, 3D 트래킹 알고리즘과 AI 학습 모델이 결합된 첨단 기술입니다. 각 구장에는 Hawk-Eye 카메라 12대 이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카메라들은 공의 위치를 초당 약 300회 이상 추적하여 입체 좌표로 기록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AI가 스트라이크존 내 통과 여부를 실시간 판단합니다.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키, 자세, 무릎과 어깨 높이를 자동 인식하여 개인별로 설정됩니다. 예를 들어, 키가 185cm인 타자와 172cm인 타자의 존은 다르게 계산되며, ABS는 타자가 어드레스(타격 자세)에 들어설 때마다 즉시 갱신합니다. 이는 기존 심판 시스템이 ‘경험에 의한 주관적 판단’이었다면, ABS는 타자 맞춤형 데이터 존을 적용하는 ‘정량적 판정 시스템’이라는 차이점을 가집니다.
심판에게 판정 결과는 무선 이어셋(헤드셋)을 통해 0.5초 내 전달됩니다. AI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면 “비프음”과 함께 신호가 전송되고, 심판은 즉시 이를 선언합니다. 이 덕분에 경기 진행 속도는 유지되면서 판정 정확도는 99% 이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ABS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KBO 데이터센터와 구단 분석팀에 전송되어, 투수의 구종별 존 통과율, 타자의 존 대응 능력, 심판 판정 일관성 지표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판정 보조 시스템을 넘어, 야구 전술의 데이터 혁신을 촉진하는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판 시스템의 변화와 ABS 시대의 새로운 역할
ABS 도입으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맞은 집단은 바로 심판진입니다. 기존에는 심판의 눈과 감각이 절대적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AI 데이터 기반 판정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심판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의 역할이 변화했다는 의미입니다.
KBO는 ABS 도입과 함께 심판 평가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습니다. 기존에는 경기 후 판정 정확도와 경기 운영 중심으로 평가했으나, 이제는 “ABS 데이터와의 일치율”, “선수·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위기 상황 대응력”이 추가되었습니다. 즉, 심판은 단순한 판정자가 아닌 경기 운영 매니저(Manager of Flow)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또한 KBO는 2024년부터 심판들에게 AI 데이터 분석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심판은 ABS 데이터가 왜 특정한 판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고, 투수나 감독의 항의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계의 보조자’가 아닌, AI와 협업하는 전문가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ABS 도입 이후 감독 항의가 약 35% 감소했으며, 선수 인터뷰에서도 “심판의 존이 일정해져 타격에 집중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습니다. 물론 완벽한 제도는 아닙니다. 포수 프레이밍(포수의 미세한 글러브 움직임)이 사라지면서 일부 투수들이 타이밍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경기 후반부 ABS와 수동 판정(Manual Override)의 균형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는 ‘기술과 인간의 공존형 심판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즉, AI가 정확도를 보완하고, 인간 심판이 경기의 리듬과 감정선을 조율하는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이죠.
KBO의 ABS 도입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한국 야구 문화의 체계적 진화를 의미합니다. 데이터와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판정 시스템은 선수, 팬, 심판 모두에게 새로운 신뢰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KBO는 세계적으로도 기술 중심 리그로 평가받으며, AI와 인간의 협업이 만드는 새로운 야구 시대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ABS의 정교화와 심판 교육이 더욱 발전한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정확하고 공정한 스포츠’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